그리움으로 돌아보는 선비의 길 ‘절골’

호남사림은 기본적으로 호남지방, 즉 전라도를 기반으로 중종대에 성립되어 성장한 사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조선 건국 이후 정치적 변동 속에서 절의를 고집했거나 정쟁에 연루됨으로써 받았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전라도로 이주해온 사대부
가문의 후예들로 연산군 대에 서서히 등장하여 중종반정 이후 본격적으로 흥기하였다.
물론 장성의 유창(강릉 劉氏)과 김영렬(의성 金氏) 등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공신에 봉해진 집안들도 있다.

절골 출신 선비 박상은 조광조와 교유하였다. 박상이 신비복위상소를 올린 후 남평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조광조는 박상을 옹호하면서 유배를 풀어줄 것을 주장하였다.

한편, 46세 되던 1519년(중종 14)에 조광조가 능성(뒤에 능주, 현재 화순)으로 유배가면서 광주를 거쳐 가자 광주 읍성 남문 밖 10리에 있는 분수원(分水院)에서 만나 면회하였다. 그리고 박상은 김안국과도 함께 학문을 토론하였다. 김인후(金麟厚:1510~1560)는 박상과 교분이 깊었는데, 박상을 찾아뵙고 인격적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박상의 문하에서 임억령, 송순, 정만종 등이 직접 사사받았다. 임억령과 깊은 교유를 한 사람이 고경명이고, 송순의 문하에서 정철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호남지방에 성리학을 보급하고 호남사림을 형성·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박상은 호남사림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다.

호남사림의 인맥 ( 당시 호남사림의 인맥을 보면 크게 여섯 계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 김굉필 계열
  • 김굉필
  • 최산두, 유계린, 윤신,
    최충성, 유맹권
  • 김인후, 유성춘, 유희춘
  • 최부 계열
  • 최부
  • 윤효정, 임우린, 유계린
  • 윤구, 윤항, 윤행, 윤복
  • 이중호
  • 송흠 계열
  • 송흠
  • 양팽손, 나세찬,
    송순, 안처성
  • 양응정
  • 박상 계열
  • 박상
  • 송순, 임억령, 정만종,
    채중길, 박순
  • 이항 계열
  • 이항
  • 김천일, 기효간, 김제민,
    백광홍
  • 김안국 계열
  • 김안국
  • 김인후, 유희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