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돌아보는 선비의 길 ‘절골’

서창동(西倉洞) 관내 최남단부인 송학산 북쪽사면 기슭의
곡간평지(谷間平地)에 자리잡고 있는 사동마을은 오래 전부터 ‘절골’마을로 불리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마을 앞에 상당히 규모가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그 못에 가득히 연꽃이 만발하여 꽃향기가 이 일대를 뒤엎어 조선시대말까지 방하동(芳荷洞)이라 하였다. 이후 일제 시대에 접어들어 마을명을 한자식으로 정비할 때 사동(寺洞)으로 고쳤다.

사동(寺洞)이라는 마을명칭을 붙게 된 데에는 이 마을 안쪽으로 난 골짜기 깊숙한 곳에 알려지지 않은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절이 있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절골이 된 것이다. 사동마을은 본 마을(절골)과 함께 마을에서 200m가량 떨어져 있는 불암마을까지 합하여 행정상으로는 서창1통으로 부르며 넓은 범위의 사동마을에 포함된다. 조선초기 충주인(忠州人) 진사(進士) 박지흥공(朴智興公)이 들어와 터를 잡고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지금에 이른다.

<1872년 지방도 전라도 광주지도> 광주 서부 방하면(方下面)에는 사동(寺洞), 서창(西倉)등의 마을 지명이 보인다. 이외에도 송정리(松亭里), 창삼촌(倉三村) 등의 마을 지명과 대촌大村), 사창(社倉) 등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