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돌아보는 선비의 길 ‘절골’

서창동의 행정구역은 조선 후기의 방하동면과 선도면·당부면을 합하여 만들어졌다.

방하동면내에는 중촌리 창촌리 사동리 원촌리 난산리 발산리, 선도면에는 세동리 동하리 마산리 화산리 개산리 동산리 월산리 화개리, 당부면에는 마륵리 신기리 금부리 만호리 심곡리 망워리 벽진리 운리리 풍암리 북촌리가 각각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위의 3개면을 통합하여 광주군 서창면을 발족하였고, 옛 방하동면 전체와 선도면 세동리 및 고내상면 수성리 일부를 합하여 서창리를 신설하였다. ‘서창’이라는 명칭은 지금의 서창마을 어귀의 극락강변에 조선시대 세곡을 저장하여 운반하던 광주의 서창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935년 광주군 서창면으로 개칭된 후 20여년 지속되어 오다가 1957년 11월 광주시 행정구역의 확장에 따라 광산군 서창면이 광주시 서창동(서창출장소)으로 변경·편입되었다. 서창출장소 관내에는 서호동, 방하동, 신호동 등 3개의 법정동이 만들어졌다. 1963년 1월 광주시 서창동은 대촌면과 함께 다시 광산군 서창면으로 재편입되었다가 1988년 5월 광산군의 광주시 편입으로 광산구 서창동으로 바뀌어 서창출장소가 되었다. 1995년 4월 20일 관할구역이 광산구에서 서구로 변경되면서 서창출장소에서 서창동으로 바뀌었다.

(1995.04.20대통령령 제14629
호에 의거 광산구 서창동
편입(14개동), ( 2001.08.06.
서창동을 서창동과
금호풍암동으로 분동(14개동)

마을 뒤편으로는 풍광이 수려한 송학산이 둘러 있고 마을 앞쪽으로 꽤 넓은 분지형태의 평야가 펼쳐져 있어 마을 주민들의 생활의 터전이 되고 있다.
생업은 논농사를 위주로 하고 밭농사를 부수적으로 곁들이고 있다. 다른 마을처럼 하우스를 이용한 특용작물재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인구수 117명, 세대수 56세대 2017. 11월 기준)

덕풍진나루 터이 나루는 서구 용두동과 광산구 동곡동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896년 지도군수 오횡묵이 지금의 서구지역을 거쳐 광주읍성 안으로 행차할 때 건넜던 나루였다. 현재는 옛 나루의 흔적을 알려줄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으며 4대강 사업으로 그 흔적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광주읍성1872년 광주지도 중 광주읍성 부분만을 확대한 것이다. 오늘날 서구는 광주읍성의 서문, 즉 광리문을 나서는 길의 연변에 속한 지역에 해당된다.